마음 맞는 클라이언트를 만난다는 건 굉장한 행운이다. 일로 만난 사이라지만 웬만하면 웃으며 하는 게 좋지 않은가. 일이 즐겁고 사람이 좋으면 하나라도 더 해주고 싶다. 고로 대행사의 원동력은 클라이언트다. 친애하는 고객님들과의 소소한 추억을 하나씩 풀어보겠다. 4탄 정도 시리즈로 장전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아무리 친해도 클라이언트와 저녁식사는 거의 하지 않는다. 업무로 엮이면 조심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얼마 전 예전에 함께 일했던, 더 이상 계약 관계가 아닌 클라이언트에게서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저녁식사 제안이었다. 첫 대면 당시 그 클라이언트는 갓 입사했었다. 사업을 이끌기 쉽지 않았을 텐데 무척 열심이었고 잘했다. 무엇보다 나를 신뢰하고 의지해줬다. 서로 고맙고 아쉬운 마음으로 사업을 마무리했다. 그래서인지 과장 살짝 보태서 좋게 끝난 구 남친에게서 연락이 온 느낌이었다.
이제 꺼릴 것 없었기에 흔쾌히 수긍했다. 실제로 날을 잡고 만나기까지 쉽지 않았지만. 각자 바쁘고 같이 일하는 사이가 아니라 다시 연락할 구실이 빈약했다. 친구 사이에도 말로만 백만 번 만나고 마는 경우 많지 않은가. 그래서 기대 안 하고 있었는데, 카톡을 주고받고 차일피일 날짜를 미루다가 놀랍게도 어찌저찌 만남이 성사되었다.
↑ MZ 사이에 낀 부장님 모먼트
내 쪽에서도 클라이언트 쪽에서도 동료 1명씩 동행하여, 총 4명 2대2로 만났다.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따지자면 MZ세대였다만, 양쪽 바이브가 달랐다. 본인은 30대 초입, 애까지 있는 유부녀인지라 유행에 겉도는 편. 동행인은 30대를 훌쩍 넘겨 그 자리에서 최연장자로 가장 기력이 쇠했다. 무튼 우리는 MZ에서 M에 가까운 느낌. 한편 그쪽은 유행에 빠삭하고 젊은 혈기 낭낭하여 앞뒤좌우로 구르며 봐도 MZ세대였다.
장소와 메뉴는 그쪽에서 정했다. 맨 노포만 찾으며 소맥이나 말아먹던 우리는 덕분에 신부동 번화가에서 스키야키라는 걸 처음 먹어봤다. 달큰한 고기에 녹진한 노른자를 콕 찍어 먹으니 '나 좀 MZ'가 된 느낌적인 느낌. 거기에 하이볼 잔까지 딱 쥐면 완벽했을 텐데 소맥은 포기할 수 없었다. 30대가 되니 알코올 취향이 점점 확고해진다. TMI 덧붙이면 본인은 소맥으로 목축이고 소주로 달리는 편.
분위기가 무르익자 MZ라면 빼놓을 수 없는 MBTI 토크로 넘어갔다. 구 남친, 아니 구 고객님들이 대화를 주도했다. 요즘에는 "나 슬퍼서 빵 샀어." 말의 반응을 보고 F와 T를 구분하는 게 유행이랬다. 나와 동행인은 금시초문이었고 진지하게 답했다. 본인 성향이 F라는 건 이전 뉴스레터를 봤다면 알 거다. "왜 슬플까?ㅠ" 한치 오차 없는 예상답변. 그 자리의 모두가 비슷한 대답을 했다. F 인간 대화합의 장이었다. 한 사람 빼고. 내 옆자리에 있던 분께서 "무슨 빵(어리둥절)"이냐며 반문했다. 파워 T 인간다운 진절머리나는 답변이었다.
이런 자리에서 공공의 적을 만들면 참 재밌다. 유일한 T 인간 조리돌림 타임으로 한동안 깔깔 웃었다. 오해할까 덧붙이면 당하는 사람도 함께 웃었다. 오해말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