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맞는 클라이언트를 만난다는 건 굉장한 행운이다. 일로 만난 사이라지만 웬만하면 웃으며 하는 게 좋지 않은가. 일이 즐겁고 사람이 좋으면 하나라도 더 해주고 싶다. 고로 대행사의 원동력은 클라이언트다. 친애하는 고객님들과의 소소한 추억을 하나씩 풀어보겠다.
지난 주, 지난 1년간 고생 많았다며 대표님께서는 전 직원에게 친히 3일간의 휴가를 하사하셨다. 앞뒤전후 막론하고 조금이라도 한가하면 쉬어야 한다고 본인은 생각하는 바(아끼다 똥 된다 이 말이야..), 냉큼 그주에 바로 휴가를 내버렸다. 와중에 슬픈 건 우리 기획디자인팀에는 쉬고 싶어도 쉴 수 없는 중생들이 꽤 많았다. 미안해도 어쩌겠는가. 나라도 얼른 쉬고 와서 바톤터치 해야지. 이런 순간에는 흐린 눈 하고 T력을 쥐어짜 본다.
휴가 계획도 야무지게 짰다.
1일차, 애기 어린이집 보내고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서 유튜브 보다가 등 배길 때 간간이 앉아 책 읽기.
2일차, 애기 어린이집 보내고 서울 가서 출판 수업 듣고 나 홀로 맛집 푸파하기.
3일차, 애기 어린이집 보내고 마라탕 먹으면서 넷플릭스 보기(애 있을 땐 못 보는 공포영화로다가)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의지 가득한 일정 사이 막간 자기계발까지 완벽 그 잡채의 계획이다. 2023년 그토록 로망하던 갓생이 짧게나마 코앞이었다.
설레는 와중 문득 생각났다. 2일차 출판 수업을 들으러 가는 곳이 상암동에 있는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란 곳인데, 진흥원이 입주한 건물에 우리 회사의 클라이언트 기관인 한국저작권보호원도 있다. 창립 초창기 연을 맺었던 보호원 담당 클라이언트 분이 문득 생각났다. 가서 여유가 된다면 오랜만에 연락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대한민국 저작권 보호에 앞장서는 저작권 보호 전문기관이다. 문화콘텐츠 종사자 등에게 저작권 보호를 위한 자문을 제공하거나 울타리가 되어주는 지원사업을 운영한다. 저작권 보호 상담, 불법복제물 신고 등도 홈페이지에서 손쉽게 이용할 수 있으니 참고바란다.
1일차 휴가 계획을 완벽하게 클리어하고 2일차 오전 댓바람부터 설레는 마음으로 서울로 상경했다. 용산역에서 요 근래 계속 먹고 싶던 매운 카레를 점심으로 먹었다.(저녁은 회전초밥에 맥주 캬.) 시간이 좀 남아 영풍문고에서 시간을 떼우다가 느즈막이 지하철을 타고 상암동에 갔다. 너무 여유부린 까닭에 진흥원 건물에 도착했을 땐 수업 시작 직전. 일찌감치 점심 먹고 클라이언트 분께 연락하여 만나고자 했던 계획은 아쉽지만 살짝 접어두었다.
급한 마음으로 부랴부랴 엘레베이터에 탑승했다. 내 앞에 있던 여성 두 분이 서 계셨는데, 한 분 뒷모습이 낯익었다. 설마설마하며 말을 걸까 말까 몇 초간 심각하게 고민했다. 사알짝 고개를 빼서 옆모습을 확인하니 세상에 마상에. 전날 생각했던 그 클라이언트 분이 맞는 거다. 아니, 내가 딱 만나고 싶던 사람을 이렇게 큰 건물에서, 마침 딱 같은 시간에 마주치는 게 가능한가 싶었다.
유튜버 쯔양이 다녀간 서울역 인근 회전초밥 집이다. 기본 10접시에 17,000원이고 그 이상부터는 1,600원씩 추가된다. 비싼 접시도 기본에 포함할 수 있다. 완전 혜자. 이날 13접시 정도 먹었고 우동, 맥주 추가했는 데도 25,000원 정도 나왔다. 입맛 까다롭지 않은 본인 기준 맛도 꽤 괜, 추천!
조심스럽게 어깨를 두드려 주임님, 하고 감탄처럼 말을 걸었다. 혹시 나만 반가운 건 아닐지 아는 체 하기 전에 소심하게 고민했으나, 어쩐 일이시냐며 놀람과 반가움을 거듭 표현해 주셔서 잠깐 사이에 감동해버렸다.(지독한 F) 수업이 임박한 관계로 쉬는시간에 커피 한 잔 하자는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두어 시간 수업을 듣고, 건물 1층 간이 카페에서 클라이언트 분과 다시 만났다. 지금은 함께 하는 프로젝트가 없어 흡사 전 애인 재회 장면 같기도 했다. 껄껄. 10분 안 되는 시간 동안 커피를 시켜 마시며 그간 근황과 하는 일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다음 수업까지 촉박해 어디 앉지도 않고 복도에 선 채로 두서 없이 대화했지만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
특별한 이벤트 덕분에 2일차 휴가 계획을 밀도있게 꽉 채웠다. 내 마음도 따숩게 꽉꽉...☆